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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전

남현희, 그녀의 화려했던 과거

by 라쿤 포스트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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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여제 남현희의 화려한 이력

 

남현희, 그녀의 화려했던 과거

 

1. 남현희 학창시절

어릴때부터 남달랐던 남현희의 펜싱 실력

 

남현희는 어릴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중학생 시절에 육상부에 들어갔는데 반에서 두번째로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체육 수업에서 멀리뛰기 1등을 했다. 펜싱부 코치를 겸하고 있던 체육 교사는 그녀의 순발력과 점프력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체육 교사의 권유를 받아 펜싱을 시작했다.

 

중3 때 전국대회를 모두 휩쓸었고 고1 때는 고3 선수를 꺾었을 정도로 국내에는 이미 적수가 없었다. 대학교 진학 후 곧바로 성인 대표팀에 뽑혔다. 작은 체구 때문에 어디까지나 국내용이라는 편견에 시달렸지만 끊임없이 노력했다.

 

2.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인전 8강에 올랐으나 입상하지는 못했다.

 

 

 

3. 남현희, 성형수술로 인한 위기

엄청난 운동신경에 미모까지 겸비한 스타 남현희

 

이 때는 이미 팀의 에이스로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을 이끌었다.

 

이 시즌 세계 랭킹 2위로 세계적인 펜싱 선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2006년 1월 대표팀에서 퇴출될 뻔했다. 그 사유는 황당하게도 성형수술 때문이었다. 팀 훈련에 불참하고 쌍꺼풀 수술과 볼에 지방을 주입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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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수술 후 붓기 때문에 훈련에 못 나온 건 사실이긴 하지만 이를 근거로 펜싱협회에서는 그녀에게 2년 선수자격 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이는 사실상 은퇴 선고나 다름없다. 그런데 남현희가 쌍꺼풀 수술을 한 이유는 속눈썹이 눈을 찔러 경기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와 함께 지방 이식수술을 받겠다는 것도 미리 감독에게 보고했다는 게 알려지며 여론은 급반전되었다. 더불어 그녀가 징계를 받은 것이 펜싱협회 내부의 파벌싸움 때문으로 추정된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펜싱협회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후 항소 끝에 펜싱협회는 국가대표 6개월 자격 정지로 징계를 경감했다.

 

 

4. 2006년, 아시안게임 2관왕 달성

우여곡절 끝에 다시 복귀, 3월에 2주 연속으로 열린 월드컵과 그랑프리에 개인 자격으로 출전해 모두 우승했다. 이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2관왕을 달성하면서 성형수술이 실력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5.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며 2연속 2관왕을 달성했다.

 

6. 2012년 런던올림픽

몸풀기 중인 남현희 선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됐지만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의 엘리사 디 프란치스카에 막판 역전패,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4년 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상대했던 발렌티나 베잘리를 다시 만났다. 준결승 때처럼 마지막에 추격을 허용한 후 결국 연장패했다.

 

대신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 펜싱 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2개 이상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 이 메달은 대한민국 펜싱 사상 최초의 올림픽 단체전 메달이었다.

 

올림픽 이후 임신(당시 남편이었던 공효석 사이에 딸이 생김) 으로 잠시 펜싱을 그만뒀다. 그리고 출산 2개월만에 열린 2013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 1년만에 국가대표로 돌아왔다.

7.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숨 고르는 중인 펜싱여제

 

3연속 2관왕을 노렸으나 개인전 준결승에서 오랜 기간 국내 2인자 신세였던 전희숙에게 패배,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단체전에서는 4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8.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하바나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로써 대한민국 펜싱 사상 유일하게 4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개인전 32강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되던 일본의 니시오카 시호에 패하면서 허무하게 마지막 올림픽을 마쳤다.

 

9.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현희는 이를 끝으로 화려했던 선수생활의 막을 내렸다

 

메달 2개를 더해 국제대회 메달 100개와 대한민국 선수 중 최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목표로 선수 생활의 마지막 여정에 나섰다. 하지만 개인전은 16강에서 전희숙에 패배했다. 그러나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국제대회 메달 99개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현재 전청조(전창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청조'가 맞는 이름)와의 스캔들때문에 많은 논란이 되고 있지만 남현희는 펜싱계에서 역사적인 인물인 것은 변함이 없다.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조만간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 같다. 펜싱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그녀의 회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