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은 판자촌 출신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미남배우'라고 하면 항상 빠지지 않고 떠오르는 배우가 있다. 그는 바로 외모, 연기력 모두 출중한 배우 '정우성'이다. 정우성은 데뷔 이후 기복없이 꾸준히 사랑받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힘든 시절은 있었다. 정우성이 판자촌 출신이라고 말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정우성의 과거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1. 정우성의 어린시절
배우 정우성은 1973년 4월 22일 서울특별시 관악구 사당동(現 동작구 사당동)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문자 그대로 '찢어지도록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재개발 지역의 판자촌 산동네에서 살았는데, 재개발 지역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았던 집이 자신의 집이었다고 한다.
('재개발 지역'이라고 말하면 부동산 알박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자촌'이라는 것은 월세조차 감당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나무판자 같은 것들로 무허가 건물을 지어서 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는 국가에 등록된 건물도 아니고 토지도 자신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재개발이 되면 건물이 허물어지고 다시 살 곳을 찾아 떠도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렇게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퇴거조치가 떨어지면 다른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하고 또 마지막까지 남았다고 한다. 어느 날은 귀가했는데 대문이 헐려 나가고, 집 대문이 없는 날은 집벽의 빈틈을 통해 집으로 들어오고, 어떤 날은 집 벽이 헐려서 눈 뜨면 산 아래가 다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유년시절에는 학업보다 알바를 많이 했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 고등학교 시절,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다
가난 탓에 배불리 먹지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키가 커서 종종 성인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정우성은 중학교 3학년 때 자신의 나이를 20대 재수생으로 속이고 서문여자고등학교 앞 햄버거 집에서 알바를 했다.
햄버거집은 정우성을 보기 위해 매번 여학생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햄버거 가게 화장실로 가는 벽면에는 정우성을 연모하는 여학생들의 낙서가 상당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인기였을지 상상하게 된다. 정우성 덕분에 매출이 급상승한 사장이 시급도 올려줬다고 한다.
정우성은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은행 말단직원이라도 될 수 있을까, 하여 경기상업고에 진학했으나, 고1 때 자퇴했다. 찢어지는 가난을 겪으면서도 그다지 큰 불행감은 느끼지 못했지만 교사들이 학생 사는 곳과 집안을 따져가면서 차별을 하는 것에는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정우성이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런 성장배경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훗날 단짝이 되는 배우 이정재를 만나게 된 것도 이 시기다.
커피숍에서 알바하던 시절, 업계 사람에게 캐스팅되어 모델 일을 시작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학업과 연기를 위해 경기상고를 중퇴하고 모델 일과 알바를 겸업하는 중, 오리온의 센스민트 CF를 통해 처음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우월한 마스크와 기럭지로 주말 예능에 간간이 모습을 비추기도 하면서 업계에서 인지도가 상승했다.
3. 전설적인 작품 <비트>와의 만남
정우성은 1994년 영화 '구미호'를 통해 연기자로 깜짝 데뷔했다. 이 때의 연기는 자신이 봐도 못 봐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만만치 않은 고소영의 발연기까지 겹쳐서 관객들은 공포에 떨었다. 서울관객 174,707명으로 흥행하지는 못 했다.
이후 몇몇의 영화들에 더 출연을 했었으나 대단한 흥행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997년의 어느 날, 정우성의 배우 인생에 궁극적인 전환을 맞이하는 사건이 오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전설적인 영화 <비트>에 캐스팅 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비트>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1994년 주간만화잡지 '영 챔프'에 연재되던 원작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1995년에 설문 조사가 있었다. 주인공 '이 민' 역으로 어느 청춘 스타가 어울리겠냐는 물음에 정우성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2위는 이정재였다)
이후 1996년 크랭크인하면서 주인공은 정우성이 되었다. 영화 <비트>는 1997년 5월에 개봉하여 20여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전국적으로는 100만여 명의 관객 수를기록하며 당시 청춘 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했다. 극장보다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렌탈 순위에 지속적으로 랭크됐고 1980년대 영웅본색, 첩혈쌍웅처럼 1990년대 시절의 10대 남성들의 로망과 판타지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정우성은 본격적으로 스타 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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