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몰랐던 이재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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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전

아무도 몰랐던 이재명 이야기

by 라쿤 포스트 202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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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사진

 

아무도 몰랐던 이재명 이야기

 홍준표에 이어서 이재명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이재명은 이제 막 단식을 끝냈다. 그것이 아주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홍준표와 마찬가지로 "이재명 갤러리"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추앙하거나 혐오하거나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엔 관심이 없다. 그저 인간이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인간 이재명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이재명의 어린시절

 

1. 개인사

◈ 어린시절 이재명은 국민학교가 집에서부터 6km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개천도 여러 개 건너야 해서 비가 오면 학교에 가지 못해 무단 결석이 많았다. 또 날씨가 너무 좋거나 학교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는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런 날에는 동네 형들과 개천에서 징거미를 잡아 먹으며 놀았다고 한다.
 
이재명의 아버지는 해방 이후 유행했던 도리짓고 땡(화투로 하는 도박)에 심취해 있었다.소유하고 있던 작은 밭을 날려먹은 것을 계기로 원래 살던 경북 안동에서 현재 이재명의 정치적 터전인 성남시로 이사했다.
 
국민학교 졸업 후 중학교를 가는 대신 대신 목걸이 공장에서 염산을 다루고 납 증기를 들이마시는 나날을 보냈는데, 사장이 석 달 치 월급을 안 주고 도망갔다. 두 번째로 다닌 고무공장에서 벨트 속으로 손가락이 말려 들어가는 사고를 겪었다. 회사는 어린 이재명 탓으로 돌려 치료비와 월급을 주지 않았다. 네 번째로 다닌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는 가죽 절단용 프레스 칼날에 손목이 눌려 뼈가 부러졌으나 누구 하나 병원에 가 보라고 말하지 않아 치료를 못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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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이재명과 아내 김혜경 여사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아 중·고등 동창이 없다. 하지만 같이 공장에 다녔던 공장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며 친분을 유지중이다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유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도와주었다고 한다.
 
  어느날 공장에 출근하던 중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여자아이들 무리와 마주친 이후 '쟤들은 학교에 가는데 나는 뭐임?'이라는 생각을 하며 '공부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등록 후 수업을 들으며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들은 점수가 나왔는데 영어 점수가 안 나와 막막했다. 그러던 중, 학원 선생님이 "재명아, 긴 선지가 답이다."라고 꿀팁을 줬고 이 팁을 이용해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로 42.5점을 맞으며 2.5점 차이로 영어 과목을 통과,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여기서 반전인 게 이 때 이재명의 나이가 15살, 즉 정상적으로 중학교에 진학했다면 중학교 2학년이였을 나이여서 결과적으로 조기졸업을 한 셈이다. 요즘으로 치면 토익 찍는 방법 가르쳐주는 거랑 다를 게 없네... 대한민국 교육제도 좀 바꿔 주십쇼 의원님들...
 

크라잉 재명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공부할 때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하기 위해 책상에 압정을 박아놨다고 한다. 졸지 않으려고 사용한 방법이였는데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공부고 뭐고 잠은 잘 자야한다는 진리.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잠을 자지 않으면 오히려 인지능력이 급감해서 공부에도 치명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사실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크게 없었다. 그러나 마침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대학 장학금 정책'을 접해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입시 학원에 등록해 처음으로 모의고사를 쳤는데 전국 학생 60만 명중 40만 등을 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1,000등 대까지 등수가 올라갔다고 한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교복을 입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그래서 중앙대학교에 입학할 때 일부러 교복을 사입고 입학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이 모두 사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고, 결국 하루 이틀 교복을 입다가 다시 사복을 입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법연수원에서 노무현 변호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단다. 당시 이재명은 변호사냐 판검사냐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는데, 노무현의 강의를 들으며 "저렇게 인권 변호사로도 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연수원 수료 후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주변에서는 판검사 6개월만 하면 전관이 되는데 왜 힘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가느냐며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김부선과 이재명. 한때 논란이 있었다.

이재명 가결? 이재명 재판? 이재명 기각

 

 

정계 입문 이전 성남시의료원 건립을 위해 성남시민 1만 8,595명의 서명을 받아 관련 안건을 성남시의회에 발의했으나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47초만에 부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해당 조례를 심의했던 성남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 회의록에 의하면 부결이 아니라 '심사보류' 결정이 난 것이며 또한 심사보류가 결정나기까지 약 2시간의 논의과정이 회의록에 담겨있기 때문에, 47초라는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47초만에 부결됐다"는 이재명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어쨌든 이재명은 이 사건 이후 정치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성남시장에 당선되어 성남시의료원을 건립하였다.
 
  김부선 이재명 스캔들 논란 당시 김부선이 이재명의 특정 부위에 큰 점이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자 이재명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 직접 아주대병원에 가서 피부과 전문의, 성형외과 전문의, 기자 2명에게 신체검증을 받았는데 굉장히 치욕스러운 경험이였다고 한다.
 
이재명이 신체검증을 받을 지 말 지 고민하던 중 김어준을 포함한 주변의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런 오직 김어준만 신체검증을 받으라고 말했단다. 결과적으로 김어준의 조언대로 신체검증을 받아 이재명은 사실상 스캔들 논란에서 판정승을 거두게 되었다. 이후 주구장창 '큰 점'만 주장해온 김부선, 강용석, 공지영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